사회전국

박주영 기자

입력 2021.08.07 15:00

                                               영화 '아쿠아맨' 속 해저도시./DCCOMICS 홈페이지

 

해저(海底)도시 vs. 해상(海上)도시. 말 그대로 바다 밑의 도시와 바다 위의 도시다. 부산과 울산이 ‘해상도시’와 ‘해저도시’ 레이스에 들어갔다. 두 도시 모두 바다를 끼고 발전한 곳들이다. 울산은 ‘해저도시’를, 부산은 ‘해상도시’를 짓겠다고 선언했다.

먼저 ‘선공’을 날린 곳은 울산시. 지난 달 2일 개최한 울산의 미래 해양신산업 육성을 위한 ‘미래형 해양연구시설 심포지엄’이 시작이었다. 송철호 시장은 “지역의 폭넓은 조선·해양 인프라를 바탕으로 새로운 도약을 할 수 있는 혁신적 해양 신산업 기술 개발을 위해 ‘해저도시’에 도전할 것”이라며 “’해저도시’를 부유식 해상풍력과 연계, 울산의 주력산업으로 안착시키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울산시는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한국해양대 등과 공동으로 ‘해저도시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해저도시’는 바다 밑에 만들어진 도시를 말한다. ‘스타트렉’ ‘스타워즈’ 등 영화·드라마 속에서 나오는 우주도시(space colony)를 바다 밑에다 건설한 것과 비슷하다. 영화 ‘아쿠아맨’ 등에도 등장했다. 요즘은 실제 현실 속에서도 그 비슷한 존재를 체험할 수 있다. 수중 5~6m 아래 객실 몇 개를 둔 호텔·리조트나 그 안의 레스토랑·스파 등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몰디브 수중 스파./후 바펜 푸시호텔 홈페이지

 

괌의 ‘피시 아이 마린 파크’, 이스라엘의 ‘레스토랑 레드 시’, 두바이의 ‘아틀란티스 더 팜 호텔’, 몰디브의 수중 스파 ‘후 바펜 푸시 몰디브’, 싱가포르의 ‘리조트 월드 센토사’ 등이 그렇다. 이들 장소에선 창 너머 바다 속에서 유영하는 알록달록 색깔의 물고기들을 보며 식사를 하거나 아로마 마사지를 받는 환상적 체험을 할 수 있다. 하루 숙박료가 3180여만원을 넘는 등 그 비용이 상당히 비싸긴 하지만 말이다.

‘해저도시’는 이들 수중호텔·레스토랑보다 훨씬 깊은 수심 아래로 내려가고 규모가 보다 넓게 확장된 개념이다. 수심으론 4~40배 가량 아래로 깊어지고 공간도 더 넓어진다. 수심 10m에 1기압씩 올라가 100m 아래로 내려가면 100t의 무게가 누르는 압력을 견뎌야 하고 빛도 사라지며 파도·조류·지진 등 환경 조건 또한 더 열악해진다. 때문에 수십~수백t 무게와 같은 수압을 견디는 재료가 있어야 하고 그런 환경 속에서 공간 구조물을 짓는 난공사도 해야 한다. 인간 주거와 시설 유지에 필요한 물자와 에너지, 산소 공급 등도 문제다.

                                      두바이에서 추진 중인 '워터 디스커스 수중호텔' 조감도./DOT

 

그런만큼 해양·조선·소재·토목·건축·기계·자원·의학·기후·지질·정보통신·우주항공·로봇 등 수많은 분야의 최첨단 공학·기술들이 총동원돼야 한다. KIOST 한택희 책임연구원은 “우주와 같은 극한의 조건에서 사람들이 활동하고 거주할 수 있게 해야 하는 해저도시는 최첨단, 극한 기술의 결정판”이라고 말했다.

해저도시를 건설하려면 우선 고운 모래 등의 퇴적물층이 아니라 암반으로 돼 있고 지진·해일 등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내야 하고 엄청난 수압과 지진·해일 등을 견딜 고강도 신소재와 구조물 고정 기술 등이 필요하다. 빛도 도달하지 않는 수십~수백m 바다 밑에서 공간 구조물을 짓는 공사는 로봇이 한다. 육상에서 만든 구조물 모듈을 해저로 가져가 조립하는 식으로 지어진다.

사람들이 생활하는 데 필요한 공기와 물, 각종 장비와 장치를 가동하고 빛을 만드는 데 들어갈 에너지 생산·공급 장치들이 있어야 한다. 물은 바닷물을 음용수로 만드는 해수담수화 시설로 공급하고 에너지는 처음엔 풍력 등으로 육상에서 조달하지만 종국엔 파력·조력·해수온도차 등을 활용해 자체 해결한다. 이밖에 파도와 지진, 해일 등 해양 상황을 관측하고 감시하는 시스템이나 통제할 수 없는 재해가 발생했을 경우 탈출할 수 있는 체계도 갖춰야 한다.

                                               울산 해저도시 구상도./한국해양과학기술원

 

울산시와 KIOST 등은 울산 앞바다에 내년부터 2026년까지 1단계로 수심 30~50m에 210㎥ 규모의 해저도시 조성을 추진 중이다. 이 해저도시에선 3~5명이 28일간 체류하며 연구·관측 활동을 할 수 있게 한다는 구상이다. 이 단계의 해저도시를 짓는 데는 400~500억원 가량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2단계(2027~2031년)엔 수심 50~200m 아래, 1500㎥ 면적에 5~30명이 30일간 체류할 수 있도록 확대할 계획이다.

KIOST 측은 “울산 해저도시가 예정대로 조성될 경우 세계 최고, 최대 수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울산 해저도시 프로젝트’엔 울산시·KIOST 등 외에 항공우주연구원·롯데건설·한국조선해양·부산대병원·KT 등 30여개 회사와 기관들이 참여하고 있다.

해저도시는 호텔·관광 등은 물론 심해생물·환경·물질 등 과학연구, 해양그린에너지·수소에너지 등 기후 위기 해결을 위한 탄소중립공간 조성, 지진·해일·육상 재난 등 자연재해 대응 연구, 수중 감시 등 군사용, 해중 데이터 센터 설치, 수중 거주공간 확보 등 다양한 성과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해저도시는 미국이 1986년 우주인 훈련 등을 위해 플로리다 앞 바다 18m 깊이 산호초 군락에 설치한 해저과학기지 ‘아쿠아리우스’를 비롯, 독일·러시아·중국·일본·프랑스 등 세계 각국이 여러 형태로 연구와 조성을 추진 중이다. 한국해양대 이한석 해양공간건축학과 교수는 “’해저도시’ 건설은 해양신산업 창출과 해양 4차 산업혁명의 확대를 가져오는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시미즈 건설이 추진 중인 해저도시, '오션 스파이럴' 구상도./Shimizu

 

반면 부산시는 해상도시를 추진한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지난 5일 빅터 키솝(Victor Kisop) UN-해비타트(HABITAT) 부사무총장과 화상회의를 갖고 부산 앞바다에 ‘해상도시’를 짓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UN-해비타트는 유엔 산하에서 인간 정주와 도시 분야를 관장하는 국제기구다. 키솝 부사무총장은 이 회의에서 “기후 위기에 선제 대응할 수 있는 해상도시 건설에 부산이 참여해달라”고 요청했고, 박 시장은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UN 측이 제안한 ‘해상도시’는 기후 변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으로 위협받는 해안도시와 기후난민을 위한 프로젝트. 기후변화로 2100년이 되면 해수면은 지금보다 평균 1.1m 높아지고 전 세계 인구의 30%에 달하는 24억 명이 침수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에 대비한 선제적 방책이다. 이 해상도시는 물에 뜨는 부유식(floating) 구조물 위에 정주생활을 할 수 있는 마을을 조성하는 것이다.

                                 부산 앞바다에 조성될 해상도시 구상도./UN-해비타트

정육각형 모양의 유닛(생활공간)을 수십 개 만들고 이를 유기적으로 연결해 대형 바지선처럼 바다 위에 뜬 땅으로 만든다. 높은 파도나 태풍 등에 견딜 수 있게 설계되고 유사시에는 다른 바다 위로 마을을 이동할 수도 있다. 그 위에 에너지와 물, 식량 등을 자급자족하면서 폐수 등 환경을 훼손시키지 않도록 자원을 재활용하는 시스템도 갖춘다. 해수면이 높아져 해안가 땅이 물에 잠기는 대홍수에서 인류를 구할 현대판 ‘노아의 방주’쯤 된다.

해상도시는 바다 위에 도시를 만든다는 측면에서 인공섬과 비슷하지만 매립 등 대규모 간척사업으로 수질 오염 등 환경파괴를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난다. 이 역시 해양생태계 오염을 최소화하는 친환경 기술로 세워지면서 풍력·태양광 등으로 에너지를 조달하고 바닷물을 음용수로 바꾸는 해수담수화와 어류·해조류 양식 및 수경재배 등을 활용한 식량 자급자족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선진 환경 친화 기술들이 적용된다.

                                            UN-해비타트의 부산 해상도시 개념도./UN-해비타트

 

부산의 해상도시는 항만기능이 사라지는 북항 내해 등 부산 앞바다에 약 2만㎡ 규모로 짓는다는 구상이다. 부산시와 UN-해비타트는 전문가 자문단 구성, UN 실무진 현지 답사 등을 거쳐 오는 연말 ‘파트너 도시’ 양해각서를 체결한 뒤 내년쯤 해상도시 건설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이 해상도시는 빠르면 2024~2025년 완공될 것으로 부산시 측은 전망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부산시가 해상도시를 지을 해양공간과 각종 인·허가에 대한 행정적 지원을 제공하고 건설에 필요한 자금은 UN-해비타트 측이 전액 부담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한국해양대 박진희 물류환경도시인프라학부 교수는 “해상도시는 해수면 상승과 지진 등 기후 변화에 따른 자연재해에 적응력이 뛰어난 미래형 도시”라며 “부산은 해상도시 건설로 관련 선진기술을 선점하고 향후 신산업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은 물론 2030부산세계박람회를 앞두고 상징적이며 랜드마크형 공간을 갖게 돼 국제 관광과 도시 브랜드 제고에 큰 이익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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