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에게 해 건축과 초기 그리스 건축의 성립 (1-2)
미노아 건축
에게 해 는 그리스 동남쪽과 소아시아(지금의 터기) 서쪽 사이의 지역을 일컫습니다. 지중해 가운데에서도 섬이 많은 지역인데 이 일대는 서양 건축의 씨앗이 뿌려진 곳입니다. 이전까지 가장 발달한 문명이었던 오리엔트문명이 서진을 시작해서 그리스 문명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해당합니다. 오리엔트 대륙의 고대 전제 건축에서 그리스 반도의 시민 건축으로 넘어가는 전환기 성격을 갖습니다. 에게 해 건축은 전반기의 미노아 건축과 후반기의 미케네 건축으로 나뉩니다.
미노아 건축은 크레타 섬을 중심으로 기원전 2000년경부터 기원전 1400년경 사이에 진행된 건축을 말합니다. 크레타 섬은 작은 섬은 아니지만 섬 하나가 독립된 건축사조 이름을 갖는 일은 흔치 않습니다. 그만큼 당시 크레타 섬 전체의 문명 수준이 높았다는 뜻인데 그 배경을 해양문화의 특징에서 찾을수 있습니다. 고대에는 가장 유리한 교통수단이 뱃길인데 크레타는 이를 잘 활용해서 주변 각국과 교류하며 발달한 정보와 문명을 받아들여 해양문화 특유의 유연성으로 잘소화해냈습니다.
특히 전쟁보다는 교역과 교류를 문명의 근간으로 삼았기 때문에 소모적 파괴 없이 문명 창출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크레타의 지도자는 전제 군주나 군사령관이 아닌 경제적 조정자에 가까웠고 문명 전체에 자유로운 개인주의가 발달했습니다. 고루 잘 사는 평등한 사회였으며 놀이 문화가 발달했습니다. 그 대신 전쟁문명에서 관찰되는 거석 구조 같은 영웅주의 분위기는 많이 약했습니다. 무덤, 성채, 신전 등 고대 기념비 건축은 거의 없었고 크노소스 궁전이 거의 유일한 대표 건축물로 남아있습니다.
크노소스궁전과 개인주의 건축의 성립
크노소스궁전은 고대 오리엔트 대륙의 전체주의 건축에서 그리스 반도의 서양 개인주의 건축으로 넘어가는 전환기 특징을 잘 보여줍니다. 건축 형식을 기준으로 하면 이집트 초기 신전과 아시리아 왕궁의 연속 구성을 기본으로 삼아 'x-y축' 양방향으로 분화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두 선례와 크노소스궁전 사이의 영향 관계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는 약한 편이나 시기가 일치하고 건축 구성이 유사성이 있는 점 등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 정도 입니다. 차이도 있는데 이들 선례 건축에서 나타나는 축 구성과 대칭 구도가 거의 깨지고 없는 점입니다. 이는 문명의 요체가 전제정치와 전쟁이 아닌 경제 교역과 개인주의 놀이 문화에 기반을 둔 데 따른 현상입니다.
크노소스 궁전은 미로 건축의 대표적인 예이기도 해서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 신화의 배경 장소인 '미궁'이라는 단어도 여기에서 나온 것입니다. 사방 약 122미터의 정사각형 윤곽 안에 수백 개의 방이 빼곡하게 들어 있습니다. 중앙에 큰 마당이 중심을 잡고 중간에 부분적으로 일직선 복도가 나 있는 것 말고는 뚜렷한 축과 대칭이 없습니다. 수백 개의 방들도 크기와 형태가 같은 것이 거의 없을 정도로 각자 고유한 형상을 유지하며 방들이 않은 방향도 제각각입니다.
이런 미로다운 특징은 고대의 전제성을 벗어나 인간 개인의 자유의지를 건축 구성에 적극 반영한 예이며 이런 점에서 고대 오리엔트 건축과 구별되는 중요한 분기점을 이룹니다. 빛과 높이 차이를 이용한 복합공간은 역사에서도 획기적인 발전이었습니다. 반 층 높이의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시선이 막혔다 트이기를 반복하고 벌어진 틈 사이로 빛이 들어와 흥겨운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실내는 화려한 벽화로 장식했는데 왕을 칭송하거나 종교적 내용을 그린 고대 오리엔트와 달리 돌고래가 펄떡이는 바닷가 풍경을 그린 점에서 개인주의의 특징을 잘 보여줍니다. 완전한 미궁은 아니어서 소 영역별로 특징을 묶을 수도 있습니다. 알현실, 옥좌실, 집무실 등 중요한 공실 영역은 방도 크고 좀 더 정리되어 있으며 행정실은 기능에 맞춰 모여 있고 창고 등 지원 시설은 일직선 복도를 따라 가지런하게 배열되어 있습니다.
미케네 건축과 메가론의 정착
미케네 건축은 기원전 1500년부터 기원전 1200년 사이에 그리스 펠로폰네소스반도의 미케네라는 도시를 중심으로 부흥했던 건축을 말합니다. 이 반도에 스파르타라는 도시가 있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이 일대 민족은 성격이 강하고 호전적이어서 전쟁이 문명의 주축을 이루었습니다. 크레타와 100여 년에 걸친 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미노아문명을 종식하고 에게 해를 재패했습니다. 이후 지중해 전체의 지배권을 놓고 바다 건너 트로이와 전쟁을 벌이면서 트로이의 목마와 같은 전설을 낳는 등 지중해 일대 도시국가들 사이에 전쟁이 특히 많던 시기였습니다. 이 내용은 호메로스의[오디세이]와 [일리아드]에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 가운데에는 도시 성채 등을 언급한 내용도 있어서 이 시기 건축은 '호머의 건축'이라고도 합니다. 문명사에서는 청동기 문명 말기에 해당합니다.
전쟁 문명답게 건축도 성채와 무덤 중심으로 발전했습니다. 성채에서는 성벽 축조술과 공간 구성이 중요합니다. 성벽은 석재를 많이 다듬지 않는 대신 다각형을 유지하면서 크기가 커져서 방어 기능과 거친 이미지는 더 향상되었습니다. '거대 성벽'이라는 뜻의 'cyclopean wall'이라는 단어도 거석을 번쩍 들어 올려 거대한 성벽을 쌓은 외눈박이 거인 싸이클롭스의 신화와 결합해 이 시기의 성벽을 지칭하는 데에서 생긴 말입니다. 외벽만 튼튼해진 것이 아니라 통로와 포대를 집어넣는 등 군사전략과 관계된 구조에서도 중요한 발전이 있었습니다.
미케네 성채의 정문 출입구에는 사자 문을 냈는데 이 문은 그리스 신전의 외관에 중요한 선례 역할을 했습니다. 상인방과 좌우인방을 갖추었는데 세 인방 모두 단일 석으로 처리했습니다. 상인방 위에는 삼각 박공을 한 번 더 얹고 그 표면에 돋을새김을 했습니다. 사자 한 쌍이 좌우에서 앞발을 제단 위에 얹고 머리로 기둥을 받치고 있는 모습입니다. 사자는 방어를 상징하는 주술적 의미가 있고 기둥은 왕실이나 왕궁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성문에 맹수 모습을 새기는 것은 오리엔트 군사 건축의 전통에서 온 것입니다. 둘을 합하면 맹수가 왕실을 지키는 것이 되는데 삼각 박공에 주술적 상징물을 새기는 이런 처리는 이후 그리스 신전에서 동일하게 반복되어집니다. 기둥의 주신은 크노소스궁전에 쓰인 것과 비슷한, 완만한 역삼각형 형태인데 주도와 주추의 디테일이 좀 더 섬세하게 발전해 있습니다. 이 기둥 역시 그리스 신전의 오더 양식의 선례가 됩니다.
미케네 이외에도 티린스, 파일로스, 아르고스 등이 대표적인 성채였는데 전쟁 도시답게 왕궁과 성벽을 한 몸으로 지었습니다.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의 왕궁을 사방에서 수미터 두께의 완강한 거대 성벽이 에워싸는 구성입니다. 이 속에 들어 있는 왕궁의 공간 구성은 그리스 건축의 직접적 선례가 되었습니다. 특히 공실을 중심으로 한 메가론이라는 공간단위는 그리스 신전의 평면으로 발전하는 씨앗이 되었습니다. 사자 문과 함께 생각하면 그리스 신전의 입면과 평면의 선례가 세트로 잡히는 셈입니다.
메가론은 '포치-전실-방-중앙 영역'의 공간 단위 혹은 구성을 말합니다. 기둥 두 개가 받치는 차양을 덮은 현관을 지나면 전실이 나오고 그 속에 중심 공간인 방이 나오는 구성입니다. 방 한가운데에는 중앙 영역을 두는데 기둥 네 개를 네 귀퉁이에 세우기도 하고 기둥없이 바닥에 높이 차이를 주거나 바닥 처리를 달리하고 소품을 두는 형식으로 구획합니다. 이곳에는 난로나 옥좌를 두는 등 말 그대로 방에서 제일 중요한 중앙 영역의 기능을 합니다.
방 하나에서 영역을 구획하고 위계를 둔 것으로 보아 그 출처는 석기시대나 청동기시대 때 족장급의 주거와 종교 시설을 겸한 건물이었을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실제 고고학적 증거를 봐도 페르시아 등 중앙아시아나 서아시아 지역에서 초창기 구성이 잡힌 다음 발칸반도를 건너 미케네 문명으로 전파되었다는 것이 정설로 되어 있습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에는 메가론 생활에 대한 기술이 여러 구절 나옵니다. 오디세우스가 자신이 쫓던 자들이 메가론에서 술판을 벌이고 있는 것을 보고 화살을 쏘아 살해한다거나 키르케가 연인을 맞이하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곳 등으로 등장합니다.
-출처- 한 권으로 읽는 임석재의 서양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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