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 다다오


(1941년~현재)

그는 일본의 세계적인 건축가입니다. 그의 인생은 파란만장하였습니다. 그는 마치 한 편의 소설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뜻대로 되는 것은 별로 없다. 시도한 건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기회를 잡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였고 그리고 그 기회를 잡은 뒤에는 그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는 건축가가 되기 이전에 치열한 삶을 살았습니다. 트럭운전사도 하였고 권투선수로서의 삶을 살았었고 공사판에 나와 노역도 마다 하지 않았습니다.


1941년 일본 오사카 시에서 태어나서, 후리츠 죠토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였으며 1962년부터 1969년 까지 세계각지를 여행하며 독학으로 건축을 배웠습니다. 특히 그가 흥미를 보였던 것은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이었습니다. 1969년 안도 타다오 건축연구소를 설립하여 지금의 그를 있게 만들어준 "스미요시의 연립주택"으로 일본 건축 학회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여기서 그의 유명한 노출콘크리트 기법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1980년대 이후에는 미술관, 공공건물, 교회나 절 등을 많이 지으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안도 다다오가 르코르뷔지에를 얼마나 존경하는지는 그가 키우던 개의 이름을 보면 알수 있습니다. 그가 키웠던 개의 이름은 바로 '르코르뷔지에'였던 것입니다. 그 개가 죽고 또 다른 개를 키웠지만 그 개의 이름 역시 '르코르뷔지에'이었습니다. 안도를 건축의 길로 이끈 사람이 바로 르코르뷔지에 였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안도 다다오가 그을 얼마나 존경하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안도 다다오가 말하는 르코르뷔지에는 건축가이면서 화가이며 조각가이고 작가이며 사상가라고 일컫습니다. 그의 인터뷰에서 그는 르코르뷔지에를 "아마 500년에 한 번 그렇게 위대한 사람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파르테논 신전의 건축가와 미켈란젤로 다음에 르코르뷔지에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단순히 건축가라고 말하기 어려울만큼 그들은 위대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안도다다오는 어려웠던 집안 형편상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생계를 이어나갔습니다. 비록 그는 정식으로 건축교육을 받은 적은 없지만 르코르뷔지에의 작품에 푹 빠져 그의 작품집을 헌책방에서 발견하여 책속의 드로잉을 수없이 따라 그리는 것으로 건축가의 꿈을 키웠다고 합니다. 또한 그는 말하길 그는 르코르뷔지에의 건축도 존경하지만 그의 삶과 정신을 흠모한다고 말합니다. "르코르뷔지에 처럼 저는 건축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였습니다. 대학에도 가지 못하였습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무작정 책을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건축물을 보러 세계로 다녔습니다. 그 과정에서 건축이 점점 저의 몸안으로 스며드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세상에는 엘리트도 많이 있지만 엘리트가 아닌 사람도 많이 존재합니다. 더군다나 일본은 학력사회 이기 때문에 그 격차를 잡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을 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노력의 결실인 기회는 반드시 우리에게 옵니다. 그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일에 관해 계속 끊임없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집중하여 계속 생각한다면 자신에게 오는 기회를 반드시 잡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회를 잡았다면 필사적으로 매달려야 합니다."

안도가 말하는 르코르뷔지에는 프랑스에서 살았지만 스위스 태생이고, 건축학을 정식으로 공부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의 의지만으로 대규모 파리도시계획을 비롯해 평생 동안 전 세계에서 많은 계획을 하였지만 안타깝게 모두 실현되지는 못하였습니다. 그의 사망 당시에 프랑스 문화부 장관이었던 안드레 말로는 장례식 조사에서 르코르뷔지에를 일컫길 "그토록 오랫동안, 끈질기게 사람들에게 숱한 모역을 당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오로지 그는 인간과 건축만을 위하여 계속 싸웠습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안도가 바라본 르코르뷔지에의 인생은 자신과 같다고 느꼈습니다. 안도 다다오는 항상 힘들때 마다 르코르뷔지에가 실패하였던 일들을 뒤로한체 꾸준히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였던 모습이 늘 귀감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의 만나보지 못하였던 책으로만 보던 르코르뷔지에의 건축물을 실제로 보기 위하여 그는 푼돈을 열심히 모아 24세의 젊은 나이게 프랑스에 가서 롱샹 성당을 보았던 감동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는 막상 롱샹성당에 도착하였는데 사방에서 무참히 쏟아져 내리는 빛을 견디지 못해 1시간도 채 안되 밖으로 뛰쳐 나오다 싶이 하였다고 합니다. 그때 그는 건축에서 빛을 어떻게 처리하는가가 중요한가를 뼈져리게 느끼는 순간이었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설계작품으로는 고베(神戶)의 로코 하우징 II(1993)과 오사카의 산토리 박물관(1994), 가고시마대학의 이나모리(稻盛)회관(1994), 오사카의 맥스레이(Maxray) 본사 사옥(1994), 나라(奈良)의 고조문화박물관(1995), 오카야마(岡山)의 나리와 미술관(1994)과 효고(兵庫)의 초등학교 등이 있습니다. 1985년 교토(京都) Times I(1985), Times II(1991), 1988년에 지은 오사카의 갤러리아 아카와 1989년에 건설된 '빛의 교회' 는 그의 건축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연과의 조화가 잘 나타난 건축물로는 치카츠 아스카 역사박물관, 구마모토현의 장식고분관, 그리고 히메지의 문학관, 물의 교회, 물의 절 등이 있다. 2007, 2008년 완공 예정인 상하이 디자인 센터(중국)의 설계를 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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