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차드 마이어

(Richard Meier, 1934 ~ )

 

 

리차드 마이어는 소문 없이 자신의 건축언어를 일관성 있게 유지, 발전시켜 왔습니다. 모더니즘의 시학, 테크놀러지의 아름다움과 실용서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에 따르면, 건축은 하나의 전통이며, 기나긴 연속체 입니다. 전통과 단절하든지 아니면 이를 강화하든지, 우리는 여전히 전통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작업은그렇게 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을 지도 모르는 질서를 찾아내고 다시 정의하고, 어떤 용도나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시도라고 그는 분명히 말합니다.

 

초기에는 르코르뷔지에의 작품사상과 동일 하다고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점차 여러 개의 프로젝트를 통하여 자신의 디자인 원리를 확고히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지속적으로 백색건축을 발전 시켜온 탓에 [게티센터]와 같은 거대한 프로젝트를 수주할 수 있는 행운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독자적 접근 방법은 초기 주택에서부터 공공 건축이나 뮤지엄 건축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며, 그의 작품이 선명한 것은 그의 건축 이념인 논리적 사고가 정연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언제나 신선하지만, 그와 반대로는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공간에 대한 그의 관심은 추상적이고 막연한 공간이 아니라 분명하고 적절한 체적을 가진 공간이어서 쾌적함을 느낍니다.

 

그는 많은 뮤지엄 건축을 디자인 하면서도 백색건축으로 일관해온 건축가입니다. 특히 로스앤젤레스 근교의 [게티센터]는 좀 더 성숙되고 완결된 백색건축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의 건축이념은 르코르뷔지에와 알바 알토의 이념을 자신의 작품에 대입시켜 꾸준히 발전시키면서 이루어졌으며, 제2세대를 대표하는 건축가 마르셀 브로이어로부터 사사를 받으며, 많은 영향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건축을 통해 실용적이면서도, 명료하고, 복합적이며, 고도로 세련되고, 절제되고, 위엄 있으면서도 편안한 시적인 공간을 실현해왔습니다.

 

그의 관심사와 연구계획은 뮤지엄 건축 및 전시 분야와 실내환경디자인 분야에 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새로운 문화적 경험 축적을 위한 답사 준비에 오늘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왜 백색의 건축가 일까요??

 

미국의 현대 건축가 리차드 마이어는 로버트 벤츄리, 케빈 로쉬, 프랭크 게리와 더불어 미국을 대표하는 제3세대 건축가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는 1960년대 뉴욕의 진보적인 건축가 그룹 '뉴욕 파이브' 멤버 중의 한 사람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면서 미국 내의 인지도를 높여 갔으며, 1980년대 부터 세계적으로 신망을 받는 건축가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이는 그가 일관성 있는 작품 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스타일인 백색건축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왔으며, 자신만의 순수한 건축 이론과 이 시대의 건축 문화를 접목시키고자 꾸준히 노력한 결과 입니다. 그의 모든 작품은 디자인 논리를 다이어 그램으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또한 그는 모든 작품의 디자인 체계를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건축가로 유명합니다. 특히 푸랑크푸르트의 [장식미술관]이나 아틀란타의 [하이뮤지엄]과 같은 세계적인 프로젝트 지명설계 경기 공모에 당선되어 21세기 건축을 이끌어 가는 세계적인 건축가로 그 명성을 더해 가고 있습니다.

 

그는 매 작품마다 자연과의 관계를 생각하는 자연축과 주변 조건으로부터의 대지축을 찾아 배치 계획에 반영, 정확한 프로그램을 통한 공간 구성, 합리적인 건축 구조 체계, 인지도를 높인 위치에 입구 설정 등 시각, 지각적 원리를 이용한 디자인 적용, 체계적인 수직 동선의 위치 설정, 공간을 에워싸는 윤곽 등을 통해 논리적인 디자인을 표현하였습니다. 이러한 논리 전개 방식은 모든 작품마다 다이어 그램을 이용하여 검증이 가능합니다.

 

마이어의 작품집 서문을 쓴 조셉 리크웰트는 그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리차드 마이어는 동시대 작가들과의 공감대를 형성하면서도, 일관성 있게 그의 작품 특성을 유지하고자 노력하였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그의 비판자나 옹호자들 마저도 르코르뷔지에의 연장선에서만 마이어를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자신은 이 같은 논의를 별로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그의 스타일은 누구의 것을 계승한 것이기 보다는 오히려 그 자신의 것임을 주장해 왔습니다. 신중한 성격의 마이어는 정신적 혼란에 시달리면서도 "백색건축"에 빠져 들었으며 이를 대처할 대안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백색 건축의 절정을 이룬 [하이뮤지엄]

 

마이어는 백색을 좋아 합니다. 백색에 관한 철학은 그의 작품집이나 연설문을 통하여 자주 언급되고 있습니다. "백색은 모든 자연색 내에 존재하는 가장 기본적인 색체로 백색표면을 이용하면 딱딱한 벽과 부드러운 개구부 그리고 빛과 그림자의 연출이 가능합니다. 백색은 전통적으로 완벽함과 순수함 그리고 명료함의 상징이며, 가장 인상적인 색채이므로 나의 작업에서 가장 개성적인 특성을 내포합니다." 그리고 "백색을 이용하면 시각적인 형태의 힘이 강화되고 건축개념이 명백해집니다. 또한 백색은 추상적 공간이나 스케일 그리고 자연과의 조합과 관련 하여 공간을 정의하고 질서화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또한 "백색은 가장 아름다운 색이며, 항상 빛에 의해 전달되고 변화되며, 하늘과 구름과 태양 그리고 달이 그러하듯 백색은 항상 순결의 상장이며, 다른 색들은 그들의 배경에 의존한 상대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나 백색은 절대성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백색을 좋아합니다.

 

따라서 그는 규격화된 백색 재료로 일관성있게 백색건축을 만들었으며, 그것은 독특한 그의 건축기호가 되었습니다. 그의 백색건축은 낮에는 밝게 빛나고 밤에는 은빛을 내면서 항상 변화하는 힘을 가짐, 이로 인해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는 상징물이 되었습니다.

 

백색건축의 찬미자인 마이어의 주요작품은 크게 1960년대 주거건축과 1970년대 공공건축, 그리고 1980년대 이후 뮤지엄 건축으로 구분됩니다.

 

1990년대 대표적인 주거건축으로는 [스미스 하우스(Smith house)], [더그라스 하우스(Douglas House)]등 많은 백색주택을 들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쉽게 세상에 알려질 수가 있었고, 1970년대에는 브롱스에 있는 [재활센터(Bronx Developmental Center)]를 비롯한 공공 건축 작품, 그리고 1980년대 이후 프랑크푸르트의 [장식미술관(Museum for Decorative Arts)]을 비롯한 뮤지엄 건축들을 통하여 신임 있는 세계적인 건축가로 인정받게 됩니다.

 

오랫동안 일관성 있게 유지해왔던 백새건축 시대를 결산하고 방향전환을 시도하겠다던 로스앤젤레스 근교의 [게티센터(Getty Center)] 프로젝트도 결국은 그 동안으 백색건축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건물에서 그의 백색건축은 절정을 이루었으며, 그는 백색건축의 찬미자로 인정되어집니다.

 

그가 백색 건축을 지속적으로 추구해 온 것은 자연 속에서 정형적 형상을 두드러지게 나타내려는 의도 였으며, 그로 인해 대중들에게 큰 감명을 줄 수 있었습니다. 특히 [게티센터]와 같은 대규모 프로젝트는 도시와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디자인과 자연의 통합작업을 이루는데 성공한 사례라고 생각 됩니다.

 

 

그의 성장 배경과 건축 이념

 

리차드 마이어는 1943년 미국 뉴저지 주 뉴와크에서 태어나 코넬 대학에서 건축교육을 받았으며, 1957년 졸업 후 그림 공ㅜ를 하다가 6개월 간의 유럽여행을 통해 건축에 대해 많은 감명을 받습니다. 그 기회에 대학 재학시설부터 흠모했던 르코르뷔지에나 알바알토를 직접 만나 그들의 사무실에서 일할 것을 부탁해 보았으나 성사되지는 않았습니다.

 

마이어는 르코르뷔지에의 영향에 대해 스스로 "내가 르코르뷔지에의 작품을 모르고 애정이 없었다면 나의 건축물을 만들지 못했을 것입니다. 나는 그가 공간을 창조하는 방식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1963년뉴욕의 [근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에서 열린 르코르뷔지에 작품전시회는 뉴욕파이브 맴버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특히 마이어에게는 이것이 자신의 건축 사무소를 개설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마이어는 주로 표현주의적인 회화와 복잡한 콜라주 작업에 많은 관심을 가졌으며, 예술가인 프랭크 스텔라와 가까운 친구가 될 정도로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습니다. 그의 스튜디오에서 작업하면서 필라델피아의 분수 설계 공모에 함께 참여한 일도 있습니다.

 

그는 졸업 후 1959년 데이비스, 브로디 그리고 위스니우스키 사무소에서 1년간 근무하다가 1960년에는 대형 설계사무소인 S.O.M 뉴욕사무소에서 근무하면서 대형 프로젝트를 하게 되었습니다.

 

1961~1963년에는 제2세대 대표 건축가의 한 사람인 마르셀 브로이어에게 사사를 받으며 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게 됩니다. 브로이어는 모호리나기와 함께 도일 뎃소 바우하우스 스쿨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월터 그로피우스, 미스 반 데어로에 그리고 조셉 알버즈가 한 것처럼 1930년대 후반에 미국에 정착했습니다.

 

 

-출처- "리차드 마이어 - 백색의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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