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하 하디드

 

(1950. 10. 31 ~2016. 03. 31)

 

 

 

 

자하 하디드는 이라크에서 태어난 영국의 건축가 입니다. 그녀는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해체주의 건축으로 유명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동대문에 건축의 물결을 펼쳐놓은 주인공입니다. 서울 한복판인 동대문 지역에 세계적인 스타 건축가가 설계하는 거대한 물결 모양의 랜드마크 건축물이 들어선다는 점에서 건축계 최고의 화두로 꼽혔었습니다.

 

그녀는 '남자판'인 건축계를 재능으로 뚫은 여성 건축가입니다. 자하 하디드는 이 시대 최고의 여성 스타 건축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보수적인 건축계에서 세계적 명성을 얻은 극소수 여성 건축가 가운데에서도 가장 스타급이며, 2004년 여성 건축가로는 처음으로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하는 프리츠커상을 받았습니다. 또한 실험적이고 개념적인 건축 이론가로 일찌감치 스타로 떠올랐지만 좀처럼 실제 건축 작업을 하지 못하며 '건축물이 없는 건축가'로 지내다가 기회를 얻자마자 주목받는 작품들을 선보이며 스타로 떠오른 저력의 건축가 입니다.

 

1950년 이라크의 바그다드에서 태어난 자하 하디드는 수학을 전공하다가 1972년 영국의 명문 건축학교인 런던 건축협회학교(AA)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이후 런던에서 활동하면서 하디드는 '페이퍼 아키텍트'로 유명해졌습니다. 페이퍼 아키텍트는 실제 지을 건물보다는 개념적이고 실험저인 건축 아이디어를 도면상으로 시도하는 건축가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녀는 새로운 건축 구상으로 여러 국제 공모전에서 잇따라 우승하며 주목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독창적인 건축물은 '실제 지을 만한' 또는 '돈 되는' 건축이 아니라는 선입견을 주는 바람에 정작 실제 건물 설계를 맡기는 건축주는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그가 자기자신을 증명해 보인 데뷔작이 바로 독일 비트라의 소방서 건물(1993년 완공) 입니다.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에 위치한 비트라 소방서

 

겉으로 보기에는 세련된 박물관처럼 보이지만 이곳의 원래 모습은 바로 소방서 입니다. 1992년에 지어진 이 비트라 소방서는 비트라 가구 공장에서 만들어진 건축물입니다. 건물의 각도를 급상승 하강의 모습을 띄며 강한 인상을 보여줍니다. 비트라 소방서는 현대건축물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던 회사대표의 열정 덕분에 탄생했다고 합니다. 비트라 회사 대표인 알렉산더 본 베제삭은 독일에서 스위스와 프랑스와의 경계선 부분에 있는 자신의 큰 공업 부지에 독창적인 건축물을 지어줄 감각 있는 건축가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찾은 런던에서 활동하던 이라크 출신의 그당시 젊은 건축가 자하 하디드를 만나게 되었고 비트라 소방서를 건축하게 되었습니다. 독일 기업 비트라는 각종 회사건물을 세계적인 건축가들에게 맡기는 것으로 유명한데, 과감하게 하디드에게 기회를 주었고 하디드는 건축물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며 마치 조각품 같은 모양의 건물로 이름값을 해낸 것이 었습니다. 이 건축물은 현대 건축의 걸작으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자하 하디드의 첫 독립작품인 비트라 소방서, 그녀는 런던 건축회사에서 경력을 쌓으며 러시아 혁명 때 혼란의 시기에 만들어진 작품들을 보며 많은 디자인 영감을 얻었습니다. 비트라 소방서는 한의 긴 덩어리로 되어있습니다. 한쪽 끝은 넓고 높은 지붕이 있는 소방차 공간이 있고 다른 한쪽은 2층으로 이뤄진 숙소와 지붕 테라스가 있습니다. 바일 암 라인 마을이 점점 발전하며 규모가 커지면서 시에서는 더 큰 소방서를 지어야 했습니다. 실험적인 디자인으로 많은 이들에게 관심을 받은 자하 하디드의 비트라 소방서는 현재로서는 더 이상 소방서 본래 용도를 사용할 수 없게 되었지만 비트라 미술관 소장품의 전시회가 열리는 전시 공간과 창고로 사용하며 아직까지 많은 방문객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습니다.

 

이후에 자하 하디드는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의 스키 점프대(2002), 독일 라이프치히 베엠베(BMW) 빌딩(2005) 등을 설계하며 건축주들이 가장 건물을 맡기고 싶어하는 건축가가 되었습니다.

 

하디드의 건축 디자인은 1920년대 러시아 아방가르드 건축가들의 영향을 받았는데,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일반적으로 80년대를 풍미했던 '해체주의' 건축가로 꼽힙니다. 그의 건축물들이 독특한 구조나 형태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하디드의 최근 작품들은 그 특유의 파격적이면서도 부드럽게 부유하는 듯한 역동적인 건물 구조가 두드러집니다. 동대문 운동장 터에 들어선 디자인 센터와 공원디자인도 하디드 특유의 미학을 담고 있습니다.

 

 

 

동대문 공원 (DDP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는 제대로 된 랜드마크인가?

 

스페인의 쇠락한 공업도시 빌바오가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구겐하임 미술관으로 유명해지고, 영국 런던이 노먼 포스터가 디자인한 독특한 모양의 시청으로 도시에 명소를 더하는 등 '스타 건축물'이 도시 경쟁력을 높이는 관광ㅈ원으로 각광받는 시대가 되면서 건축에 대한 사회경제적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명 건축가의 작품을 명품 구매하듯 들여오는 것이 꼭 정답은 아니지만 서울이 세계적 도시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유명 건축가들의 화제작이 어느정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컸습니다. 자하 하디드가 DDP의 설계를 맡은 것도 더욱 늦기 전에 그러한 흐름을 따라가려는 서울시의 노력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리차드 마이어

(Richard Meier, 1934 ~ )

 

 

리차드 마이어는 소문 없이 자신의 건축언어를 일관성 있게 유지, 발전시켜 왔습니다. 모더니즘의 시학, 테크놀러지의 아름다움과 실용서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에 따르면, 건축은 하나의 전통이며, 기나긴 연속체 입니다. 전통과 단절하든지 아니면 이를 강화하든지, 우리는 여전히 전통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작업은그렇게 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을 지도 모르는 질서를 찾아내고 다시 정의하고, 어떤 용도나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시도라고 그는 분명히 말합니다.

 

초기에는 르코르뷔지에의 작품사상과 동일 하다고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점차 여러 개의 프로젝트를 통하여 자신의 디자인 원리를 확고히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지속적으로 백색건축을 발전 시켜온 탓에 [게티센터]와 같은 거대한 프로젝트를 수주할 수 있는 행운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독자적 접근 방법은 초기 주택에서부터 공공 건축이나 뮤지엄 건축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며, 그의 작품이 선명한 것은 그의 건축 이념인 논리적 사고가 정연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언제나 신선하지만, 그와 반대로는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공간에 대한 그의 관심은 추상적이고 막연한 공간이 아니라 분명하고 적절한 체적을 가진 공간이어서 쾌적함을 느낍니다.

 

그는 많은 뮤지엄 건축을 디자인 하면서도 백색건축으로 일관해온 건축가입니다. 특히 로스앤젤레스 근교의 [게티센터]는 좀 더 성숙되고 완결된 백색건축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의 건축이념은 르코르뷔지에와 알바 알토의 이념을 자신의 작품에 대입시켜 꾸준히 발전시키면서 이루어졌으며, 제2세대를 대표하는 건축가 마르셀 브로이어로부터 사사를 받으며, 많은 영향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건축을 통해 실용적이면서도, 명료하고, 복합적이며, 고도로 세련되고, 절제되고, 위엄 있으면서도 편안한 시적인 공간을 실현해왔습니다.

 

그의 관심사와 연구계획은 뮤지엄 건축 및 전시 분야와 실내환경디자인 분야에 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새로운 문화적 경험 축적을 위한 답사 준비에 오늘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왜 백색의 건축가 일까요??

 

미국의 현대 건축가 리차드 마이어는 로버트 벤츄리, 케빈 로쉬, 프랭크 게리와 더불어 미국을 대표하는 제3세대 건축가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는 1960년대 뉴욕의 진보적인 건축가 그룹 '뉴욕 파이브' 멤버 중의 한 사람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면서 미국 내의 인지도를 높여 갔으며, 1980년대 부터 세계적으로 신망을 받는 건축가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이는 그가 일관성 있는 작품 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스타일인 백색건축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왔으며, 자신만의 순수한 건축 이론과 이 시대의 건축 문화를 접목시키고자 꾸준히 노력한 결과 입니다. 그의 모든 작품은 디자인 논리를 다이어 그램으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또한 그는 모든 작품의 디자인 체계를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건축가로 유명합니다. 특히 푸랑크푸르트의 [장식미술관]이나 아틀란타의 [하이뮤지엄]과 같은 세계적인 프로젝트 지명설계 경기 공모에 당선되어 21세기 건축을 이끌어 가는 세계적인 건축가로 그 명성을 더해 가고 있습니다.

 

그는 매 작품마다 자연과의 관계를 생각하는 자연축과 주변 조건으로부터의 대지축을 찾아 배치 계획에 반영, 정확한 프로그램을 통한 공간 구성, 합리적인 건축 구조 체계, 인지도를 높인 위치에 입구 설정 등 시각, 지각적 원리를 이용한 디자인 적용, 체계적인 수직 동선의 위치 설정, 공간을 에워싸는 윤곽 등을 통해 논리적인 디자인을 표현하였습니다. 이러한 논리 전개 방식은 모든 작품마다 다이어 그램을 이용하여 검증이 가능합니다.

 

마이어의 작품집 서문을 쓴 조셉 리크웰트는 그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리차드 마이어는 동시대 작가들과의 공감대를 형성하면서도, 일관성 있게 그의 작품 특성을 유지하고자 노력하였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그의 비판자나 옹호자들 마저도 르코르뷔지에의 연장선에서만 마이어를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자신은 이 같은 논의를 별로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그의 스타일은 누구의 것을 계승한 것이기 보다는 오히려 그 자신의 것임을 주장해 왔습니다. 신중한 성격의 마이어는 정신적 혼란에 시달리면서도 "백색건축"에 빠져 들었으며 이를 대처할 대안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백색 건축의 절정을 이룬 [하이뮤지엄]

 

마이어는 백색을 좋아 합니다. 백색에 관한 철학은 그의 작품집이나 연설문을 통하여 자주 언급되고 있습니다. "백색은 모든 자연색 내에 존재하는 가장 기본적인 색체로 백색표면을 이용하면 딱딱한 벽과 부드러운 개구부 그리고 빛과 그림자의 연출이 가능합니다. 백색은 전통적으로 완벽함과 순수함 그리고 명료함의 상징이며, 가장 인상적인 색채이므로 나의 작업에서 가장 개성적인 특성을 내포합니다." 그리고 "백색을 이용하면 시각적인 형태의 힘이 강화되고 건축개념이 명백해집니다. 또한 백색은 추상적 공간이나 스케일 그리고 자연과의 조합과 관련 하여 공간을 정의하고 질서화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또한 "백색은 가장 아름다운 색이며, 항상 빛에 의해 전달되고 변화되며, 하늘과 구름과 태양 그리고 달이 그러하듯 백색은 항상 순결의 상장이며, 다른 색들은 그들의 배경에 의존한 상대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나 백색은 절대성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백색을 좋아합니다.

 

따라서 그는 규격화된 백색 재료로 일관성있게 백색건축을 만들었으며, 그것은 독특한 그의 건축기호가 되었습니다. 그의 백색건축은 낮에는 밝게 빛나고 밤에는 은빛을 내면서 항상 변화하는 힘을 가짐, 이로 인해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는 상징물이 되었습니다.

 

백색건축의 찬미자인 마이어의 주요작품은 크게 1960년대 주거건축과 1970년대 공공건축, 그리고 1980년대 이후 뮤지엄 건축으로 구분됩니다.

 

1990년대 대표적인 주거건축으로는 [스미스 하우스(Smith house)], [더그라스 하우스(Douglas House)]등 많은 백색주택을 들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쉽게 세상에 알려질 수가 있었고, 1970년대에는 브롱스에 있는 [재활센터(Bronx Developmental Center)]를 비롯한 공공 건축 작품, 그리고 1980년대 이후 프랑크푸르트의 [장식미술관(Museum for Decorative Arts)]을 비롯한 뮤지엄 건축들을 통하여 신임 있는 세계적인 건축가로 인정받게 됩니다.

 

오랫동안 일관성 있게 유지해왔던 백새건축 시대를 결산하고 방향전환을 시도하겠다던 로스앤젤레스 근교의 [게티센터(Getty Center)] 프로젝트도 결국은 그 동안으 백색건축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건물에서 그의 백색건축은 절정을 이루었으며, 그는 백색건축의 찬미자로 인정되어집니다.

 

그가 백색 건축을 지속적으로 추구해 온 것은 자연 속에서 정형적 형상을 두드러지게 나타내려는 의도 였으며, 그로 인해 대중들에게 큰 감명을 줄 수 있었습니다. 특히 [게티센터]와 같은 대규모 프로젝트는 도시와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디자인과 자연의 통합작업을 이루는데 성공한 사례라고 생각 됩니다.

 

 

그의 성장 배경과 건축 이념

 

리차드 마이어는 1943년 미국 뉴저지 주 뉴와크에서 태어나 코넬 대학에서 건축교육을 받았으며, 1957년 졸업 후 그림 공ㅜ를 하다가 6개월 간의 유럽여행을 통해 건축에 대해 많은 감명을 받습니다. 그 기회에 대학 재학시설부터 흠모했던 르코르뷔지에나 알바알토를 직접 만나 그들의 사무실에서 일할 것을 부탁해 보았으나 성사되지는 않았습니다.

 

마이어는 르코르뷔지에의 영향에 대해 스스로 "내가 르코르뷔지에의 작품을 모르고 애정이 없었다면 나의 건축물을 만들지 못했을 것입니다. 나는 그가 공간을 창조하는 방식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1963년뉴욕의 [근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에서 열린 르코르뷔지에 작품전시회는 뉴욕파이브 맴버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특히 마이어에게는 이것이 자신의 건축 사무소를 개설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마이어는 주로 표현주의적인 회화와 복잡한 콜라주 작업에 많은 관심을 가졌으며, 예술가인 프랭크 스텔라와 가까운 친구가 될 정도로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습니다. 그의 스튜디오에서 작업하면서 필라델피아의 분수 설계 공모에 함께 참여한 일도 있습니다.

 

그는 졸업 후 1959년 데이비스, 브로디 그리고 위스니우스키 사무소에서 1년간 근무하다가 1960년에는 대형 설계사무소인 S.O.M 뉴욕사무소에서 근무하면서 대형 프로젝트를 하게 되었습니다.

 

1961~1963년에는 제2세대 대표 건축가의 한 사람인 마르셀 브로이어에게 사사를 받으며 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게 됩니다. 브로이어는 모호리나기와 함께 도일 뎃소 바우하우스 스쿨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월터 그로피우스, 미스 반 데어로에 그리고 조셉 알버즈가 한 것처럼 1930년대 후반에 미국에 정착했습니다.

 

 

-출처- "리차드 마이어 - 백색의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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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정이유

 

건축물 건축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실 설계-시공 등으로 인하여 건축물 안전사고가 발생하고 있어, 이러한 불법행위를 근절하기 위하여 설계자, 공사시공자 및 공사감리자 등 건축관계자의 책임을 강화하고, 착공 전 면밀한 안전 검토 체계 구축 및 소규모 건축물 등에 대한 감리 체계를 개선하려는 것입니다.

 

또한, 정기점검 및 수시점검의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는 소규모 노후 건축물의 안전사고를 예방하고 서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안전점검을 실시토록 하는 한편, 특별건축구역과 건축협정제도의 활성화 대책을 마련하는 등 현행 제도의 운영상 일부 미비점을 개선-보완하려는 것입니다.

 

 

■  주요내용

 

가. 제조업자, 유통업자 정의 신설 및 의무 보여(제2조 제1항 제12호의2-제12호의3호 및 제24조의2 신설)

1) 건축물의 건축 등에 사용하는 건축자재를 제조하는 제조업자 및 납품하는 유통업자의 정의를 도입합니다.

2) 건축물의 안전과 기능 등에 지장을 주지 아니하도록 건축 등에 사용하는 건축자재의 제조-보관 및 유통에 대한 제조업자와 유통업자에게 의무를 부여합니다.

 

나. 초고층 건축물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건축물에 대하여 건축허가 전에 국토교통부장관이 지정한 공공기관에서 구조 및 인접 대지의 안전성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 및 평가를 하도록 기준을 신설하고 평가 결과를 공개하도록 합니다.(제13조의2 신설)

 

다. 건축주는 공사현장을 관리-감독하는 현장대리인을 지정-배치하여야 하고, 현장대리인을 배치하지 아니한 건축주와 현장을 이탈한 현장대리인에       대하여는 벌칙 및 과태료를 부과합니다.(제24조제6항, 제111조제3호의2, 제113조제3항 신설)

 

라. 허가권자의 공사감리자 지정 및 감리비용 관리 체계를 마련합니다.(제25조 제2항, 제11항 및 제12항 신설)

1) 소규모 건축물 및 분양을 목적으로 하는 건축물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건축물에 대하여 허가권자가 공사감리자를 직접 지정합니다.

2) 허가권자가 공사감리자를 지정한 경우 사용승인 전에 감리 계약서에 따라 감리비용이 지불되었는지를 확인하고, 관련 기준을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로 정합니다.

 

마. 건축관계자등에 대한 업무제한 제도 도입(제25조의2 신설)

1)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주요 건축물에 대하여 건축관계자등이 건축법 제40조, 제41조 등을 위반하거나 중대한 과실로 건축물의 기초 및 주요구조부에 중대한 손괴를 일으켜 사람을 사망하게 한 경우에 1년 이내에서 업무정지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규모이상의 재산상 피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최초 적발 시 6개월 이내, 그로부터 2년이 지나기 전에 재차 적발 시 1년 이내의 업무정지를 명할 수 있도록 합니다.

2) 제40조, 제41조 등을 위반한(사망사고 및 재산상 피해 제외) 경우와 제28조를 위반하여 가설시설물이 붕괴한 경우에는 시정명령 후 시정조치 불이행시 3개월 이내, 2년 이내 재적발시 3개월 이내, 3차 적발시 1년 이내에서 업무정지를 명할 수 있도록 합니다.

 

바.  관계전문기술자의 참여 자격 및 의무 사항을 명시하고, 부속구조물을 설치하는 경우 관계전문기술자의 협력을 받도록 합니다.

(제67조제1항 및 제87조제1항)

 

사. 소규모 노후 건축물에 대하여 허가권자가 안전점검을 실시하는 한편, 소유자 등에게 안전점검 실시를 요구할 수 있고, 이 경우 신속한 점검이         

     필요하면 점검비용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합니다.(제35조제3항 신설)

 

아. 특별건축구역의 지정대상 확대를 위하여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에 따른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구역을 특별건축구역으로 지정할 

     수 없는 구역에서 제외하고, 이 구역을 특별건축구역으로 지정할 때에는 국방부장관과 사전협의합니다.

     (현행 제69조 제2항 제5호 삭제, 제69조 제3항 신설)

 

자.  현재 특별건축구역 내에서 모니터링 대상으로 지정된 건축주 또는 소유자는 모니터링 보고서를 사용승인 시 허가권자에게 제출하여야 하고,

또한 사용승인일부터 10년까지 정기적으로 모니터링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어 건축주 등에게 시간적-경제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으므로 건축주 등이 아닌 국토교통부장관 및 허가권자가 직접 모니터링을 하거나 분야별 전문가 등에게 용역을 의뢰할 수 있도록 개선합니다.(제72조 제7항, 현행 제75조 제2항 삭제, 제79조제2항 및 제77조제2항 등).

 

차. 특별건축구역에 건축하는 건축물에 대하여 용적률 기준을 적용하지 아니할 수 있도록 합니다.(제73조제1항 제1호)

 

카.  건축협정구역에 건축하는 건축물에 대하여 건폐율, 용적률 및 높이제한 등의 건축기준과 [주택법]의 일부 기준을 완화하여 적용할 수 있도록

합니다. (법률 제13785호 건축법 일부개정법률 제77조의13제6항 신설)

 

타. 국토교통부장관 등이 건축물 건축에 관한 자료 제출 요청 및 지도-감독의 대상에 관계전문기술자를 추가합니다.(제87조 제1항)

 

파. 건축물 안전영향평가를 하는 자와 건축자재를 점검하는 자의 벌칙 적용 시 공무원으로 간주합니다.(제105조)

 

 

-출처- 건축법규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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