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리가다

란 무엇일까?

 

 

야리가다란 우리말로 '규준틀'을 말합니다.

일본에서 건설, 산업기술들이 많이 건너와 우리의 현장에는 일본어가 여전히 많이 사용되어 지고 있습니다. 일본어를 안쓰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지금 현재 서로 소통하고 의사전달이 이루어 질려면 일본어를 알아야 하는것이 사실입니다. 이어서 설명하겠습니다.

 

규준틀 말이 어렵죠? 그림으로 이해하시면 편합니다.

 

 

 

 

 

현장에서 작업할때 제일 먼저 시작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건축측량 즉 야리가다를 잡습니다.

대지경계와 현황측량을 국토정보공사에 신청하게 되면 경계표시 및 지적 층량도를 주는데 그것을 보고 건축배치도를 바탕으로 건물배치를 위한 규준틀(야리가다)를 설치하고, 전면도로와 지적도근점을 찾아 건물 높이를 결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측량 용어로 지거 측량이라고도 합니다. 지적 경계 말뚝을 가늘실이나 낚시줄로 연결하고 (야리가다실이라고 팔기도 합니다) 실 높이는 일층 바닥 높이로 맞추고 이선에서 90도 방향으로 거리를 측정해서 건물 형태를 잡습니다. 야리가다는 기준을 잡는다는 뜻과 같이 사용되기도 합니다. 대지경계선이 나오게 되면 스케일자로 거리 측정을 하여 도면을 현장에 그리는 것입니다.

 

 

 

 

즉 울퉁불퉁한 땅을 수평을 잡아서 틀(가다)을 잡는 것입니다. 

 

일본어로 풀어보면 그 뜻을 이해하기가 보다 수월하실겁니다.

 

야리가다 やりかた 

 

やり(야리)의 뜻은 ~하다 입니다. 

かた(가다)의 뜻은 본, 꼴, 틀, 형 입니다. 영어로 하면 Form(폼) 순 우리말로 하면 꼴, 꼬라지 이겠네요.

흔히 우리끼리 "저 놈봐라, 폼 잡는거 보소~" 혹은 "니 꼬라지가 뭐꼬?" 등의 말을 합니다. 또는 "와 점마 봐라, 가다 잡는거 봐라"라고 말합니다.

말그대로 모양잡는 다는 말입니다. 

 

건축의 처음단계에서 건물이 제대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모양부터 잡아야 할것입니다. 

"하다" 라는 뜻의 "야리" 와 "폼"이란 뜻의 "가다"가 합하여 야리가다 가 만들어 집니다. 

즉 모양잡는다는 말입니다. (야리가다에 쓰인 야리는 야리끼리와 같습니다.)

 

아래와 같은 순서로 일이 진행되어 집니다.

 

1.건축측량(야리가다)

2.터파기

3.버림con`c 타설(/단열재설치유무는 설계에따라,)

4.먹메김

5.기초철근배근.(전기,및 설비투입)

6.기초 타설

7.되메우기 /먹메김

8.1층 외벽거푸집 완료 후 벽체철근 조립 검침후  

2층바닥 slab 철근배근조립 후 con`c레벨 표시후  2층바닥 타설 (전기,설비 공정 함께 ,,,)

9.현황측량  실시

10.비계설치

11.8번 공정 반복

프랭크 게리


(1929 ~ 현재)



2000년대 캐나다, 미국의 거장 건축가인 그는 해체주의 건축을 대표합니다.


1989년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습니다. 



유명하지 않는 지역을 랜드마크로 변모하는 방법중에 하나는 유명 건축가가 설계한 건축물이 그곳에 들어서는 것일 것입니다.


그의 업적으로는 바스크 지방의 잘 알려지지 않았던 도시인 빌바오에 프랭크 게리의 외장이 마구 뒤틀린 듯한 외양의 구겐하임 미술관을 설계한 것입니다. 미술관을 유치하면서 관광객이 급증하여 이른바 '빌바오 효과'를 일으키며 그는 일약 스타덤에 올라서게 됩니다. 


그는 약 2008년 초중반까지 전성기를 유지하였으나 현재로서는 건축계에서 사실상 흑역사로 취급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건축의 3대 요소인 기능, 구조, 미 중 구조적인 측면에서 취약한 그의 건축물때문입니다. 예전의 각광받던 때와 현재의 대접은 엄청난 차이를 띄고 있습니다. 그는 설계적인 문제를 무시하고 독특하게 뒤틀린 외양에만 집착했다는 많은 비판에 직면해 있습니다. 실제로 문제가 되는 것이 건물에 물이 샌다든지 건물에 크랙이 발생하는 등의 문제가 여러 언론에 노출되었습니다. 


이렇듯 많은 비판을 받는 그이지만 그래도 그의 건축 영향력이 완전히 무시되는 것은 아니고 여전히 그의 추종자도 많이 유지되고 그의 건축론을 인정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 실정입니다. 그리고 또한 해체주의 자체가 아직도 현재진행중이고 대안이 나오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름을 알리게 된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노먼 포스터


(1935년 ~ 1983년)




영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건축가인 그는 영국 잉글랜드 스톡포트의 레디시에서 노동자인 부모아래에서 외동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항공기에 대한 많은 관심을 가졌었었고 그 덕분에 영국 공군에 입대를 결심하게 됩니다. 


군에 제대하고 1956년 맨체스터 대학교 건축&도시설계 학부에 입학한 그는 건축과 도시계획을 공부하면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와 미스 반 데어로에, 르 꼬르 뷔지에, 오스카니 마이어 등 유명 건축가들의 작품에 큰 관심을 보이게 됩니다. 이후에 1961년 맨체스터 대학교를 졸업하고 예일 대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밟으며 훗날 건축 설계 파트너가 될 리처드 로서즈를 만나게 됩니다.


리처드 로저스와 일 년간 미국을 돌아보며 여행하고 돌아온후 노먼 포스터는 1963년에 영국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여행을 하며 친해진 리처드 로저스와 건축설계팀인 'Team 4'를 결성합니다. 이들은 하이테크 산업 디자인을 바탕으로 한 디자인을 앞세워 순식간에 큰 명성을 얻게 됩니다.


그 후로 Team 4가 해체되고 1967년 노먼 포스터와 그의 아내인 웬디 치즈먼은 현재의 건축설계회사 'Foster and Partners'의 전신인 'Foster Associates'를 결성하게 됩니다. 1968년 부터 미국인 건축가 리처드 버크민스터 플러와 협력하여 그가 죽기 전까지 사뮈엘 베케트의 극장 프로젝트를 포함하여 친환경적인 디자인 건축물들을 만들게 됩니다. 그 후에 다양한 건축물들을 설계하며 세계적인 건축가로 인정받게 됩니다.



홍콩의 HSBC 빌딩




385피트의 고층건물인 런던 밀레니엄 타워 - 친환경적인 건물로 유명하다


미국 뉴욕의 허스트 타워


한국타이어의 테크노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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