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경보형 감지기

 

란 무엇 일까요??

 

 

주택용 소방시설인 소화기와 단독경보형 감지기는 2017년 2월 4일 부로 의무설치하여야 합니다.

 

그 설치기준은 아래와 같습니다. 

 

 

 

 

소화기 및 단독경보형 감지기 

 

 

 

 

 

 

 설치대상  단독주택, 다가구주택, 연립주택, 다세대주택 등
 설치기준  소화기 - 세대별, 층별 1개 이상
 단독경보형 감지기 - 방, 거실 등 구획된 실마다 

 

 

 

 

 

 

 

그렇다면 과연 단독경보형 감지기란 어떤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이렇게 생긴 물건인데요 이것을 천정에 달게 되는 것입니다.

 

 

단독경보형 감지기는 천정에 달려있으면서 화재가 일어났을때 연기를 감지하여 자동경보음이 울리는 장치 입니다. 

 

설치도 간편하고 가격도 인터넷으로 구매시 1~2만원 선에서 구매할수 있어서 저렴한 비용으로 화재를 예방할수 있는 장치입니다.

 

건축에서도 준공(사용승인)이 떨어지기 위해서는 소방 설치 기준에 따라 소화기 및 단독경보형 감지기를 설치기준에 따라 설치 하여야만 준공이 떨어집니다.

 

여러분도 집에 단독경보형 감지기와 소화기를 설치하여 화재를 예방하시기 바랍니다.

 

이상 단독경보형 감지기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행복한 하루되세요 ^^

먹매김

 

이란 무엇일까요??

 

 

건축설계사무소에다가 건축주가 의뢰하여 설계를 맡기게 되면 도면이 나오고 관공서에 건축허가 접수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착공신고를 하고 착공이 떨어지게 되면 설계도를 토대로 대지에 야리가다를 하여 터파기를 하게 되고 콘크리트 매트를 깔게 되면 건물이 올라가게될 바닥이 준비가 된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이제 설계도에 나와있는대로 옹벽을 세우고 하려면 여기서 

 

먹매김 이란 과정이 필요하게 되어집니다.

 

 

 

 

먹매김은 말그대로 먹선을 매긴다 라는 뜻입니다. 바닥이든 벽이든 말이지요.

 

영어로는 Marking 입니다. 예전에 학교에서 시험볼때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야~야, 시험지에 마킹 제대로 재대로 해라~"라고 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으셨을 겁니다. 제대로 표시해라는 말씀이셨겠지요.

 

 

이처럼 설계도대로 바닥에 제대로 표시를 하는 것 즉 바닥면에 형상이나 치수, 마감면의 위치등을 표기하는 것이 먹매김이라는 것입니다. 먹줄치기, 먹튀기기, 금긋기 등 같은 말입니다. 

 

이처럼 설계도대로 바닥에 제대로 표시를 하는 것 즉 바닥면에 형상이나 치수, 마감면의 위치등을 표기하는 것이 먹매김이라는 것입니다. 먹줄치기, 먹튀기기, 금긋기 등 같은 말입니다. 

먹매김을 모두 끝낸 위의 사진을 보시면 마감재를 포함하는 벽의 두께, 창호와 도어의 위치까지 디테일하게 표시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압출법 보온판 

 

이란 무엇일까요??

 

 

건축물의 에너지절약 설계기준 제2조 [건축물의 열손실방지 등] 1항 1호에 보시면 "건축물을 건축하거나 대수선, 용도변경 및 건축물 대장의 기재내용을 변경하는 경우에는 

거실의 외벽, 최상층에 있는 거실의 반자 또는 지붕, 최하층에 있는 거실의 바닥, 바닥난방을 하는 층간 바닥, 거실의 창 및 문 은 열관류율 기준 또는 단열재 두께 기준을 준수하여야 한다.

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이와 같이 건축물에는 열손실을 줄이기 위해 즉, 단열을 위해 단열재라는 것이 들어가게 됩니다.

 

그 단열재의 종류 중 하나가 바로

압출법 보온판

이라는 것인데요.

 

아래의 그림과 같이 생긴 것입니다. 

 

 

 

그 색이 핑크색이라서 아이소 핑 라고도 불리는 건축 단열재입니다.

 

 

 

 

무엇으로 만들어 질까요??

 

 

압출법보온판의 제조 과정은 생각 보다 간단합니다. 여러분들도 눈치 채셨을지 모르겠지만 압출법보온판은 스티로폼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생김새가 스티로폼이랑은 다르다구요?? 그 비밀은 바로 열을 가하는 것입니다.

 

비드법 보온판이라고도 불리는 스티로폼을 을 고온 고앞에서 녹여서 만드는 것입니다.

 

압출기에 발포제와 첨가물을 넣어 섞은 후에 일정한 고온 그리고 고압에서 스티로폼을 녹여 점성의 플라스틱 용액을 만듭니다.

 

그 다음, 모양을 만들기 위해 이 뜨거운 용액을 금형을 통해 압출 시키게 됩니다.

 

금형의 모양에 따라 형태가 결정되고, 열이 식으면 두부처럼 고체가 되는 것이지요.

 

그 이후에 재단이 들어갑니다. 이러한 연속적인 과정을 통해 균일한 품질의 압출법 보온판이 만들어 지게 되는 것입니다.

 

 

 

왜 핑크색일까요??


색은 사실 업체 별로 다릅니다. 하지만 국내에서 많이 생산하는 업체인 벽산에서 분홍색인 것을 내놓게 되는데 그 상품의 이름이 아이소 핑크입니다. 마치 굴삭기를 우리가 굴삭기 회사인 포크레인으로 부르는 것과 비슷한 것이 겠죠.

 

 

특징

 

두드러진 특징은 바로 내구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습기 저항력이 많이 높아 건축재료로서는 거의 방습 재료에 가까울 정도입니다.

 

압출법보온판은 우리가 흔히 아는 다른 단열재인 스티로폼(비드법 보온판)에 비하면 월등히 높은 방습효과를 자랑합니다. 건축에서는 건축물이 지면에 닿고 비가올때는 물에 닿기도 한데 높은 방습효과는 이러한 데에 많은 이점이 있어 건축자재로서 많이 활용되어집니다. 그리고 또한 그 무게가 가볍고 가공이 쉬워 건축자재로서는 탁월합니다. 하지만 단점으로는 화재시에 유독가스를 뿜어낸다는 것입니다.

 

 

시공 부위

 

주택 시공시에는 주로 습기가 많은 환경에 사용합니다. 보통 습기가 높은 지하층이나 옥탑, 그리고 외벽에 시공하게 됩니다.

 

 

마감재료로서의 가능성

 

 

압출법보온판은 외장재로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이유는 부착 강도가 약하기 때문에 금방 떨어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온도에 약하기 때문에 특히 여름에 온도가 70도가 넘어가게 되면 표면에 발포 현상이 일어납니다.

 

 

 

 

그 외의 단열재

 

 

단열재는 압출법 보온판 이외에도 다양합니다. 국토 교통부 고시의 열관류율(열이 지나가는 저항값)이 충족되는 단열재를 건축자재로 사용하는 것이지요. 

 

열전도율에 따른 분류로 보면 발포폴리스티렌 보온재경질우레탄폼보온재, 인조광물섬유보온재로 나뉩니다.

 

아래의 표를 보세요.

 

 

 

 

 

이상 압출법보온판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

 

 

※참고 법조항

◎건축물의 에너지절약 설계기준 제2조 [건축물의 열손실방지 등]

더보기

 

2(건축물의 열손실방지 등① 건축물을 건축하거나 대수선용도변경 및 건축물대장의 기재내용을 변경하는 경우에는 다음 각 호의 기준에 의한 열손실방지 등의 에너지이용합리화를 위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

1. 거실의 외벽최상층에 있는 거실의 반자 또는 지붕최하층에 있는 거실의 바닥바닥난방을 하는 층간 바닥거실의 창 및 문 등은 별표1의 열관류율 기준 또는 별표3의 단열재 두께 기준을 준수하여야하고단열조치 일반사항 등은 제6조의 건축부문 의무사항을 따른다.

2. 건축물의 배치·구조 및 설비 등의 설계를 하는 경우에는 에너지가 합리적으로 이용될 수 있도록 한다.

② 1항에도 불구하고 열손실의 변동이 없는 증축대수선용도변경건축물대장의 기재내용 변경의 경우에는 관련 조치를 하지 아니할 수 있다다만 종전에 제3항에 따른 열손실방지 등의 조치 예외대상이었으나 조치대상으로 용도변경 또는 건축물대장 기재내용의 변경의 경우에는 관련 조치를 하여야 한다.

③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건축물 또는 공간에 대해서는 제1항제1호를 적용하지 아니할 수 있다다만·난방 설비를 설치할 계획이 있는 건축물 또는 공간은 제1항제1호를 적용하여야 한다.

1. 창고차고기계실 등으로서 거실의 용도로 사용하지 아니하고·난방 설비를 설치하지 아니하는 건축물 또는 공간

2. ·난방 설비를 설치하지 아니하고 용도 특성상 건축물 내부를 외기에 개방시켜 사용하는 등 열손실 방지조치를 하여도 에너지절약의 효과가 없는 건축물 또는 공간

 

 

 

조민석


(1966 ~ 현재)





조민석 그는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콜롬비아대학 건축대학원을 졸업하게 됩니다. 조민석은 뉴욕 콜라튼 맥도날드 스튜디오와 폴쉑 앤드 파트너스에서 건축가로 첫발을 내 딛은 뒤에 네덜란드의 OMA로 옮겨 여러지역의 다양한 건축 및 도시 계획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폭넓은 경험을 쌓게 됩니다. 1998년에는 제임스 슬레이드와 함께 뉴욕에서 조슬레이드 아키텍처를 설립하여 미국와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였습니다. 그리고 2003년에 한국으로 돌아와 '매스스터디스'라는 자신의 설계사무소를 열게 됩니다.


다수의 수상 경력을 가지고 있는 그는 1994년에 신건축국제도시주거공모전에 당선되게 됩니다. 조슬레이드 아키텍처에서 활동하던 2000년에는 뉴욕 건축연맹에서 주관하는 미국 젊은 건축가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그리고 1999년, 2003년에는 미국 프로그레시브 아키텍처 어워드를 쾌거하게 됩니다. 이에 연달아 2008년 세계 최우수 초고층 건축상의 톱 5 작품에 최종선정되었고 2010년에는 에스트레뉴로 다시 지명되었습니다. 


최근에는 2010상하이 엑스포 한국관으로 국제박람회기구에서 수여하는 건축부분 은상을 수상하였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대통령 표창까지 받게 됩니다.


딸기 테마파크와 Different But Same Houses로 각가 2004년, 2010년에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 건축전에 초청되었으며, 열린주택 이라는 순회전시와 뉴 트렌드 오브 아키텍처 인 유럽, 아이사 퍼시픽 2006~2007에 참여 하였습니다. 현재 다수의 국제 심포지움 및 강의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픽셀 하우스', '딸기가 좋아', '네이처 포엠', '부티끄 모나코', '서울 코뮨 2026','에스트레뉴','앤 드뮐메스터 매장','링돔','자이 갤러리','상하이 엑스포 2010: 한국관','Daum Space.1' 등을 꼽을수 있습니다.


부티크 모나코


서울 코뮨 2026


딸기가 좋아

야리가다

란 무엇일까?

 

 

야리가다란 우리말로 '규준틀'을 말합니다.

일본에서 건설, 산업기술들이 많이 건너와 우리의 현장에는 일본어가 여전히 많이 사용되어 지고 있습니다. 일본어를 안쓰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지금 현재 서로 소통하고 의사전달이 이루어 질려면 일본어를 알아야 하는것이 사실입니다. 이어서 설명하겠습니다.

 

규준틀 말이 어렵죠? 그림으로 이해하시면 편합니다.

 

 

 

 

 

현장에서 작업할때 제일 먼저 시작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건축측량 즉 야리가다를 잡습니다.

대지경계와 현황측량을 국토정보공사에 신청하게 되면 경계표시 및 지적 층량도를 주는데 그것을 보고 건축배치도를 바탕으로 건물배치를 위한 규준틀(야리가다)를 설치하고, 전면도로와 지적도근점을 찾아 건물 높이를 결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측량 용어로 지거 측량이라고도 합니다. 지적 경계 말뚝을 가늘실이나 낚시줄로 연결하고 (야리가다실이라고 팔기도 합니다) 실 높이는 일층 바닥 높이로 맞추고 이선에서 90도 방향으로 거리를 측정해서 건물 형태를 잡습니다. 야리가다는 기준을 잡는다는 뜻과 같이 사용되기도 합니다. 대지경계선이 나오게 되면 스케일자로 거리 측정을 하여 도면을 현장에 그리는 것입니다.

 

 

 

 

즉 울퉁불퉁한 땅을 수평을 잡아서 틀(가다)을 잡는 것입니다. 

 

일본어로 풀어보면 그 뜻을 이해하기가 보다 수월하실겁니다.

 

야리가다 やりかた 

 

やり(야리)의 뜻은 ~하다 입니다. 

かた(가다)의 뜻은 본, 꼴, 틀, 형 입니다. 영어로 하면 Form(폼) 순 우리말로 하면 꼴, 꼬라지 이겠네요.

흔히 우리끼리 "저 놈봐라, 폼 잡는거 보소~" 혹은 "니 꼬라지가 뭐꼬?" 등의 말을 합니다. 또는 "와 점마 봐라, 가다 잡는거 봐라"라고 말합니다.

말그대로 모양잡는 다는 말입니다. 

 

건축의 처음단계에서 건물이 제대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모양부터 잡아야 할것입니다. 

"하다" 라는 뜻의 "야리" 와 "폼"이란 뜻의 "가다"가 합하여 야리가다 가 만들어 집니다. 

즉 모양잡는다는 말입니다. (야리가다에 쓰인 야리는 야리끼리와 같습니다.)

 

아래와 같은 순서로 일이 진행되어 집니다.

 

1.건축측량(야리가다)

2.터파기

3.버림con`c 타설(/단열재설치유무는 설계에따라,)

4.먹메김

5.기초철근배근.(전기,및 설비투입)

6.기초 타설

7.되메우기 /먹메김

8.1층 외벽거푸집 완료 후 벽체철근 조립 검침후  

2층바닥 slab 철근배근조립 후 con`c레벨 표시후  2층바닥 타설 (전기,설비 공정 함께 ,,,)

9.현황측량  실시

10.비계설치

11.8번 공정 반복

프랭크 게리


(1929 ~ 현재)



2000년대 캐나다, 미국의 거장 건축가인 그는 해체주의 건축을 대표합니다.


1989년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습니다. 



유명하지 않는 지역을 랜드마크로 변모하는 방법중에 하나는 유명 건축가가 설계한 건축물이 그곳에 들어서는 것일 것입니다.


그의 업적으로는 바스크 지방의 잘 알려지지 않았던 도시인 빌바오에 프랭크 게리의 외장이 마구 뒤틀린 듯한 외양의 구겐하임 미술관을 설계한 것입니다. 미술관을 유치하면서 관광객이 급증하여 이른바 '빌바오 효과'를 일으키며 그는 일약 스타덤에 올라서게 됩니다. 


그는 약 2008년 초중반까지 전성기를 유지하였으나 현재로서는 건축계에서 사실상 흑역사로 취급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건축의 3대 요소인 기능, 구조, 미 중 구조적인 측면에서 취약한 그의 건축물때문입니다. 예전의 각광받던 때와 현재의 대접은 엄청난 차이를 띄고 있습니다. 그는 설계적인 문제를 무시하고 독특하게 뒤틀린 외양에만 집착했다는 많은 비판에 직면해 있습니다. 실제로 문제가 되는 것이 건물에 물이 샌다든지 건물에 크랙이 발생하는 등의 문제가 여러 언론에 노출되었습니다. 


이렇듯 많은 비판을 받는 그이지만 그래도 그의 건축 영향력이 완전히 무시되는 것은 아니고 여전히 그의 추종자도 많이 유지되고 그의 건축론을 인정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 실정입니다. 그리고 또한 해체주의 자체가 아직도 현재진행중이고 대안이 나오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름을 알리게 된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노먼 포스터


(1935년 ~ 1983년)




영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건축가인 그는 영국 잉글랜드 스톡포트의 레디시에서 노동자인 부모아래에서 외동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항공기에 대한 많은 관심을 가졌었었고 그 덕분에 영국 공군에 입대를 결심하게 됩니다. 


군에 제대하고 1956년 맨체스터 대학교 건축&도시설계 학부에 입학한 그는 건축과 도시계획을 공부하면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와 미스 반 데어로에, 르 꼬르 뷔지에, 오스카니 마이어 등 유명 건축가들의 작품에 큰 관심을 보이게 됩니다. 이후에 1961년 맨체스터 대학교를 졸업하고 예일 대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밟으며 훗날 건축 설계 파트너가 될 리처드 로서즈를 만나게 됩니다.


리처드 로저스와 일 년간 미국을 돌아보며 여행하고 돌아온후 노먼 포스터는 1963년에 영국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여행을 하며 친해진 리처드 로저스와 건축설계팀인 'Team 4'를 결성합니다. 이들은 하이테크 산업 디자인을 바탕으로 한 디자인을 앞세워 순식간에 큰 명성을 얻게 됩니다.


그 후로 Team 4가 해체되고 1967년 노먼 포스터와 그의 아내인 웬디 치즈먼은 현재의 건축설계회사 'Foster and Partners'의 전신인 'Foster Associates'를 결성하게 됩니다. 1968년 부터 미국인 건축가 리처드 버크민스터 플러와 협력하여 그가 죽기 전까지 사뮈엘 베케트의 극장 프로젝트를 포함하여 친환경적인 디자인 건축물들을 만들게 됩니다. 그 후에 다양한 건축물들을 설계하며 세계적인 건축가로 인정받게 됩니다.



홍콩의 HSBC 빌딩




385피트의 고층건물인 런던 밀레니엄 타워 - 친환경적인 건물로 유명하다


미국 뉴욕의 허스트 타워


한국타이어의 테크노돔

1. 에게 해 건축과 초기 그리스건축의 성립 (2-2)

 

 

 

<아트레우스의 보고>와 둥근 천장

 

무덤에서는 두 가지가 중요한데, 매장 형식이 다양해진 점과 이것을 집대성한 원형 공간이 등장한 점입니다. 미케네의 무덤은 성채와 한 몸이 된 왕궁의 일부로 부속되면서 피라미드 같은 독립성은 없어졌지만 매장 형식이 다양해지는 발전이 있었습니다. 원시시대부터 고대 문명을 거치면서 나타났던 대표적인 매장 형식인 석관묘, 갱묘, 묘실형, 톨로스 등의네 가지가 모두 쓰였습니다. 이 가운데 파일로스가 원형 공간의 모태가 되었는데 이전의 톨로스가 원형 지붕까지 갖추지 못하고 평면만 원형에 머물렀던 것에 비해 미케네에서는 지붕까지도 원형으로 해서 평면과 일체가 되는 종합적 구성을 완성했습니다.

 

<아트레우스의 보고>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미케네 문명 전반에 걸쳐 왕의 무덤이 여럿 지어졌는데 대부분 톨로스 형태였습니다. 순장 전통이 남아 있어서 많은 금은 보화도 함께 묻었기 때문에 무덤 대신 '보고'라는 명칭을 사용합니다. 보통 톨로스는 암벽을 둥글게 파고 들어가는 방식으로 둥근 천장을 만들었는데 <아트레우스의 보고>는 이것을 모델로 삼아 도를 쌓아서 둥근 천장을 만든 점에서 건축 기술의 발전에서 중요한 분기점을 이룹니다. 보존 상태가 제일 좋고 원형 공간의 구조 기술이 가장 발전하였습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원시적 영웅주의와 결부된 상징성에 치중한 반면 이 보고는 규모는 작아진 대신 원형 공간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 윤곽이 처음 잡히기 시작했으며 이것을 구조물로 구현하는 기술 발전이 있었습니다.

 

전체 구성은 드로모스라고 부르는 30여 미터 길이의 통로를 거쳐 출입문을 지나 원형묘실에 이르는 순서로 이루어 집니다. 출입문 위에는 120톤이 나가는 석판이 상인방으로 놓여있는데 6x7 미터의 크기에 두께는 1.4미터였습니다. 둔탁한 고대 거석 구조의 이미지를 벗기 위해 두께를 앏게 하면서 위쪽 벽체에서 내리누르는 무게가 문제가 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벽체를 파내 진공 부로 만들었습니다. 이런 처리 방식을 릴리빙 아치 라고 부르는데 벽을 파낸 만큼 가벼워져서 무게의 부감을 현저하게 줄일 수 있었습니다.

 

관건은 둥근 천장인데 여기에서는 아직 완전한 반구에 이르지 못하고 기다란 역깔때기 모양에 머물렀습니다. 조적술로 완전한 반구의 둥근 천장을 만드는 기술은 아치를 3차원으로 회전해야 가능한 매우 어려운 기술이어서 로마의 판테온에나 가서 완성됩니다. <아트레우스의 보고>에서는 내어쌓기 라는 다소 원시적인 기술을 이용해서 꼭대기가 뾰쪽한 역깔때기를 만드는 데 만족해야 했습니다. 33단의 원형 벽을 위로 올라갈수록 안으로 조금씩 들어오게 쌓은 뒤 맨 위 단은 뚜껑을 덮듯이 막는 방식이었습니다. 이렇게 만든 원형 공간은 지름이 13.2미터, 높이는 14.5미터 였습니다. 원은 그 자체가 하늘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등 기하학적 특수성이 강한 도형입니다. 원형 공간을 축조하기 시작하면서 서양 건축은 사각형 중심의 고대 오리엔트 건축과 차별화 되며 진일보한 단계로 집입했습니다.

 

 

초기 그리스 건축의 성립

 

기원전 1200년경이 되면서 그리스 본토의 지방에서 도리안 족이 유리한 자연환경과 그리스 일대의 발달한 문명을 손에 넣기 위해 남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그리스 본토로 진출을 꾀하던 미케네 문명과 충돌하며 100여년 간 전쟁을 치르렀습니다. 이 전쟁은 도리안 족의 승리로 끝났는데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청동기 문명에 대하 철기 문명의 승리였습니다. 미케네 문명은 처동기 문명의 마지막 단계였고 도리안 문명은 서양 지역에 등장한 최초의 철기 문명이었습니다.

 

이후 그리스 반도에는 철기 문명에 의해 이전의 청동기 문명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건축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변수가 하나 더 추가되는데 바다 건너 소아시아에서 건너온 이오니안족이 합류한 것이 었습니다. 두 민족은 큰 정쟁 없이 잘 융합해서 그리스 문명의 모태를 형성했습니다. 두 민족은 많이 달랐습니다. 도리안 족은 대륙적 기질과 합리적 이성으로 무장했으며 법규에 능한 남성적 민족이었던데 반해 이오니안 족은 소아시아와 그리스 반도의 에게 해 연안 일대에 근거지를 둔, 좀 더 부드럽고 감성적 기질을 가진 해양 민족이었습니다.

 

일대일대응은 무리이나, 굳이 비유를 하자면 '스파르타식 대 아테네식'의 대별 구도에서 도리안 족을 스파르타에, 이오니안 족은 아테네에 각각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 문명이 발전할 수 있었던 중요한 원동력이 스파트타와 아테네로 대표, 대별되는 쌍 개념을 하나로 통합해낸 데 있듯이 도리안 족과 이오니안 족의 통합은 그리스 문명이 싹트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이때가 대략 기원전 1000년경이었습니다. 이후 크고 작은 전쟁 등 부침이 있긴 했지만 그리스 문명은 비교적 안정된 양상으로 전개되며 조금씩 완성된 모습을 갖춰갔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리스 반도 일대에 흩어져 있던 다양한 소수민족들이 통합되면서 작게는 주요 도시들을 중심으로 한 도시국가의 틀을 다졌고 크게는 이들을 하나로 아우르는 그리스 세계라는 큰 문명 세계를 이루어 갔습니다.

 

도리안 족과 이오니안 족의 통합이 완료된 시점은 기원전 800년경이었습니다. 이후 100년 정도의 준비기를 더 거친 뒤 그리스 문명은 본격적인 발전을 시작하면서 구체적인 결과물들을 생산하기 시작해서 약 400여년의 전성기를 누리게 됩니다. 그리스 건축의 시대 구분은 한 가지로 통일된 의견은 없으나 기원전 1100년부터 기원전 700년까지의 암흑기, 기원전 700년부터 기원전 480년까지의 아르카이크기, 기원전 480년 부터 기원전 323년까지의 고전기로 구분하는 것이 제일 보편적입니다.

 

 

철기 문명과 신전사회

 

그리스 건축은 그리스 문명이 그러하듯이 철기 문명의 산물입니다. 이전 청동기 문명의 고대 오리엔트 건축과 비교했을 때 거석 구조는 사라졌지만 건물이 작아진 대신 부재의 수가 많아지고 디테일이 섬세해지며 조합이 복잡해지는 변화가 있었는데 이것 역시 철기 문명으로 발전하면서 나타난 새로운 현상입니다. 도구의 관점에서 보면 강도가 세진 철기 덕분에 섬세한 가공이 가능해진 결과입니다. 문화의 관점에서 보면 철기 덕분에 승전이 많아지면서 노예가 늘어나고 생산도 향상되면서 사회 전반에 일어난 변화의 산물입니다. 중산층 이상인 남성들의 여유 시간이 많이 지고 직업이 세분화되면서 분야별로 전문직이 등장했습니다. 이들은 군역과 노동 등에서 해방되어 여유로운 상태에서 자신의 전문적 일에 몰두할 수 있었고 건축과 예술도 섬세해지는 발전이 있었습니다.

 

그리스 건추과 그리스 문명은 신전을 중심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고대 오리엔트 건축의 5대 건축물이었던 성채, 무덤, 왕궁, 신전, 탑 가운데 신전으로의 집중이 두드러 졌습니다. 신전은 제일 중요한 건축물이었을 뿐 아니라 단순한 건축물을 뛰어넘어 사회 전체의 중심체 역할을 했습니다. 일차적으로는 종교 건물이었지만 신전에서는 제사만 올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정치 집회, 시민 활동, 축제 법령반포 등 중요한 사회 활동이 벌어지는 배경의 장이었습니다.

 

신전은 사면을 에워싸는 기둥 열, 삼각 박공을 갖춘 지붕, 실대 공간인 셀라로 구성됩니다. 기둥은 단순히 구조 역할만 한 것이 아니라 아래로 는 기단과, 위로는 지붕과 합해지면서 오더라는 종합적 구조체로 작동했습니다. 오더에는 그리스 문명을 일군 두 민족의 이름을 따서 도리스식과 이오니아식 두 종류가 있었습니다. 이 두 이름은 그대로 신전 양식의 명칭으로도 통용됩니다. 나중에 후기 그리스 시대 때 새로 만들어지는 코린트식까지 합하면 그리스 고전 예술을 대표하는 3대 양식이 된다.

 

오더에는 여러가지 상징체계가 실렸는데 장식과 비례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장식은 바깥 보의 외부와 지붕 박공이 돋을새김이나 그림 형식으로 들어갔는데, 신화나 승전 등이 주요 내용을 이루었습니다. 구성 부재 수가 많아지고 각 부재는 정밀해졌으며 이것들의 조합이 복합적으로 되면서 전체 구성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생겼는데 피타고라스가 정리한 비례 법칙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스 신선을 구성하는 크고 작은 부재들의 크기 및 이것들 사이의 위치와 관계는 그냥 정해진 것이 아니라 일정한 비례 법칙을 따랐습니다. 기둥 밑동의 반지름을 모듈로 삼아 큰 부재는 이것의 배수로 작은 부재는 분수로 각각 그 크기를 정했습니다.

 

비례법칙은 두 오더 양식이 달랐습니다. 예를 들어, 도리스식 오더의 주간 거리는 4.5-5.5가, 이오니아식 오더는 9-10이 표준형입니다. 기둥의 높이는 도리스식 오더는 14가, 이오니아식 오더는 18이 표준형입니다. 세부 부재의 비례는 이오니아식보다 도리스식에서 더 많이 지켜졌습니다. 이는 법규에 능한 도리안 족의 민족성이 그대로 닮아서 도리스식은 굵고 둔탁하고 남성적인 반면 이오니아식은 훨씬 더 날씬하고 섬세하며 장식적입니다. 주두도 마찬가지여서 도리스식이 납작한 원반과 판재로만 이루어지는 데 반해 이오니아식은 소용돌이 문양으로 장식했습니다.

 

- 출처- "한 권으로 읽는 임석재의 서양건축사"

라파엘 비뇰리

(Rafael Vinoly, 1944 ~ 현재)

 

그는 비록 남아메리카의 가장 작은 나라중 하나이지만 교육과 문화적인 면에서 깊은 전통을 지닌 우루과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국립 오페라 극장의 감독이었으며 남미 전역을 돌아다니며 그 당시 유명했던 모든 예술가들과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비뇰리가 어렸을 적에 아르헨티나로 이주하였고 아버지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오페라극장에서 일을 하였습니다. 한편 라파엘 비뇰리의 어머니는 건축학을 공부하다가 수학으로 진로를 바꾸었고, 이러한 환경덕에 비뇰리는 일찍이 예술과 그외의 다양한 직업을 택하게 됩니다. 그는 건축가로서의 인생이 얼마나 힘이드는지 일찍이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음악보다 건축일을 하는 것이 오랜 기간동안 예술 활동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건축가로 진로를 결정하게 됩니다. 현재는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고 그가 쓰는 언어는 집에서 스페인어를 사용합니다. 미주 대륙을 옮겨 다니며 생활한 탓에 영어, 포르투갈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를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의 첫 작품은 18세때 대학에 들어갔을 때 학교에서 실시한 목공소 건물 설계였습니다. 32살이 되던해에 미국으로 이민을 오게 됩니다.

종로타워의 디자인은 건축주가 프로그램상으로 요구하는 목적을 실현할 수 있는 시설로 만들기 위해 기존 구조물의 리노베이션 및 건축적인 재구성 공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경복궁과 종묘 사이 서울 종로구 시내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는 이 건물은 원안의 기본적인 틀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서 기존 건물의 구조에는 최소한으로 손을 댔습니다. 도시 계획적인 관점에서보 때 부지의 코너에서 뒤로 후퇴하여 조성된 공공 공간은 건물 내에서 일어나는 각종 활동과 지하 광장과 확실한 연계를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건물 디자인의 핵이 되는 건축적 해결책은 두 가지 기본 원칙에 그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보다 공공적인 건물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 그리고 하나의 건축 구조물을 교육과 체험을 촉진시키고 회사의 전자 및 기술적인 분야의 발전상을 과시하는 매치로 변모시키는 것입니다. 많은 유동인구로 항상 붐비는 사거리에 위치한 이 건물은 대지의 한 코너를 본질적으로 공공적인 성격의 도로와 건물 내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활동을 중재하는 요소로 변화시키려 합니다.

 

코너 부분이 오픈되도록 계획된 건물은 거대한 "도심 캐노피"로 덮여 야외 도심광장을 정의 내리게 됩니다. 이 철재와 유리로 이루어진 구조물은 도시와 건물 양쪽에 속하면서, 현재 건물의 에워싸인 성격을 외향적인 오픈 건축구조로 변환시키는 구역인 전이의 공공공간의 입지를 확고히 하기 위해서 이용 가능한 볼륨의 입면 최상부에서 건물 정면을 뛰어넘어 캔틸레버로 되어있습니다. 장력용 부재시스템은 캐노피 가장자리로부터 동양사이 투영되는 합성 오픈 메쉬 재료를 이용한 반투명 띠로 구성된 내부로 후퇴되는 커다란 스크린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각종 정보와 건물 내부의 활동은 건축물이 도시의 시각적인 관심거리가 되는 -"새로운 지평선"의 물질적인 표현을 통해서 도시로 디스플레이 되어질 수 있습니다. 지표면 한층 반 아래 레벨에서 위와 유사한 도시와의 연계방법으로 지하 도심광장을 이용하여 건물이 기존의 지하철 역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건물의 유리 입면은 하부로 연장되어 일련의 1,2층 그리고 3층 높이가 복잡하게 뛰섞여져 있는 아트리움공간을 만들어 내며, 도시와 건물 사이의 경계에서 광장 입구와 각종 상점 그리고 음식점이 들어선 지하철역으로 연결하고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그 외 아트리움 층 배면부에 위치한 거대한 멀티 비디오 스크린 시스템은 시각적으로 건물의 4개층을 연결하는 "정보의 벽"을 형성하여 건물 내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위치를 감지하는 시각적 이정표 역할을 합니다. 이정보의 벽은 선형 공간의 모체를 이루는 연속성을 확립할 뿐 아니라 건물 내 주광고판이 되어 사실 같이 느껴지는 깊이를 준다. 건물의 현태는 기존 평면모양(수직동선 코어)으로 3개의 튜브모양 부재의 수직연장과 돌출을 통해서 탄생되었으며, 이 건물을 아주 먼 거리에서도 눈에 잘 띄느 주요 랜드마크로 변모시킵니다.

자하 하디드

 

(1950. 10. 31 ~2016. 03. 31)

 

 

 

 

자하 하디드는 이라크에서 태어난 영국의 건축가 입니다. 그녀는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해체주의 건축으로 유명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동대문에 건축의 물결을 펼쳐놓은 주인공입니다. 서울 한복판인 동대문 지역에 세계적인 스타 건축가가 설계하는 거대한 물결 모양의 랜드마크 건축물이 들어선다는 점에서 건축계 최고의 화두로 꼽혔었습니다.

 

그녀는 '남자판'인 건축계를 재능으로 뚫은 여성 건축가입니다. 자하 하디드는 이 시대 최고의 여성 스타 건축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보수적인 건축계에서 세계적 명성을 얻은 극소수 여성 건축가 가운데에서도 가장 스타급이며, 2004년 여성 건축가로는 처음으로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하는 프리츠커상을 받았습니다. 또한 실험적이고 개념적인 건축 이론가로 일찌감치 스타로 떠올랐지만 좀처럼 실제 건축 작업을 하지 못하며 '건축물이 없는 건축가'로 지내다가 기회를 얻자마자 주목받는 작품들을 선보이며 스타로 떠오른 저력의 건축가 입니다.

 

1950년 이라크의 바그다드에서 태어난 자하 하디드는 수학을 전공하다가 1972년 영국의 명문 건축학교인 런던 건축협회학교(AA)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이후 런던에서 활동하면서 하디드는 '페이퍼 아키텍트'로 유명해졌습니다. 페이퍼 아키텍트는 실제 지을 건물보다는 개념적이고 실험저인 건축 아이디어를 도면상으로 시도하는 건축가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녀는 새로운 건축 구상으로 여러 국제 공모전에서 잇따라 우승하며 주목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독창적인 건축물은 '실제 지을 만한' 또는 '돈 되는' 건축이 아니라는 선입견을 주는 바람에 정작 실제 건물 설계를 맡기는 건축주는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그가 자기자신을 증명해 보인 데뷔작이 바로 독일 비트라의 소방서 건물(1993년 완공) 입니다.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에 위치한 비트라 소방서

 

겉으로 보기에는 세련된 박물관처럼 보이지만 이곳의 원래 모습은 바로 소방서 입니다. 1992년에 지어진 이 비트라 소방서는 비트라 가구 공장에서 만들어진 건축물입니다. 건물의 각도를 급상승 하강의 모습을 띄며 강한 인상을 보여줍니다. 비트라 소방서는 현대건축물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던 회사대표의 열정 덕분에 탄생했다고 합니다. 비트라 회사 대표인 알렉산더 본 베제삭은 독일에서 스위스와 프랑스와의 경계선 부분에 있는 자신의 큰 공업 부지에 독창적인 건축물을 지어줄 감각 있는 건축가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찾은 런던에서 활동하던 이라크 출신의 그당시 젊은 건축가 자하 하디드를 만나게 되었고 비트라 소방서를 건축하게 되었습니다. 독일 기업 비트라는 각종 회사건물을 세계적인 건축가들에게 맡기는 것으로 유명한데, 과감하게 하디드에게 기회를 주었고 하디드는 건축물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며 마치 조각품 같은 모양의 건물로 이름값을 해낸 것이 었습니다. 이 건축물은 현대 건축의 걸작으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자하 하디드의 첫 독립작품인 비트라 소방서, 그녀는 런던 건축회사에서 경력을 쌓으며 러시아 혁명 때 혼란의 시기에 만들어진 작품들을 보며 많은 디자인 영감을 얻었습니다. 비트라 소방서는 한의 긴 덩어리로 되어있습니다. 한쪽 끝은 넓고 높은 지붕이 있는 소방차 공간이 있고 다른 한쪽은 2층으로 이뤄진 숙소와 지붕 테라스가 있습니다. 바일 암 라인 마을이 점점 발전하며 규모가 커지면서 시에서는 더 큰 소방서를 지어야 했습니다. 실험적인 디자인으로 많은 이들에게 관심을 받은 자하 하디드의 비트라 소방서는 현재로서는 더 이상 소방서 본래 용도를 사용할 수 없게 되었지만 비트라 미술관 소장품의 전시회가 열리는 전시 공간과 창고로 사용하며 아직까지 많은 방문객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습니다.

 

이후에 자하 하디드는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의 스키 점프대(2002), 독일 라이프치히 베엠베(BMW) 빌딩(2005) 등을 설계하며 건축주들이 가장 건물을 맡기고 싶어하는 건축가가 되었습니다.

 

하디드의 건축 디자인은 1920년대 러시아 아방가르드 건축가들의 영향을 받았는데,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일반적으로 80년대를 풍미했던 '해체주의' 건축가로 꼽힙니다. 그의 건축물들이 독특한 구조나 형태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하디드의 최근 작품들은 그 특유의 파격적이면서도 부드럽게 부유하는 듯한 역동적인 건물 구조가 두드러집니다. 동대문 운동장 터에 들어선 디자인 센터와 공원디자인도 하디드 특유의 미학을 담고 있습니다.

 

 

 

동대문 공원 (DDP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는 제대로 된 랜드마크인가?

 

스페인의 쇠락한 공업도시 빌바오가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구겐하임 미술관으로 유명해지고, 영국 런던이 노먼 포스터가 디자인한 독특한 모양의 시청으로 도시에 명소를 더하는 등 '스타 건축물'이 도시 경쟁력을 높이는 관광ㅈ원으로 각광받는 시대가 되면서 건축에 대한 사회경제적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명 건축가의 작품을 명품 구매하듯 들여오는 것이 꼭 정답은 아니지만 서울이 세계적 도시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유명 건축가들의 화제작이 어느정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컸습니다. 자하 하디드가 DDP의 설계를 맡은 것도 더욱 늦기 전에 그러한 흐름을 따라가려는 서울시의 노력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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